상징체계에서 상징하는 것을 빼내어 버리는 순간 그것은 우리들의 관심에서 존재하지 않게 된다.
그런 의미에서 탑이라는 것은 "상징의 고도화"라고 규정지어도 그 본연의 맥락에서 벗어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탑에는 신앙이 존재하고, 문화를 전승하며, 그 현란한 모양새는 종합예술이라 하여도 무방할 것이다.
본래 탑塔이라는 말은 스투파에서 나왔다.
스투파स्तूप 기원을 보자
붇다는 쿠시나가라의 사라쌍수나무 아래서 열반에 들었다. 열반에 들자 슬픔에 싸인 대중은 붇다의 시신을 다비(茶毘, 화장)했고, 유골은 여덟 부족에게 각각 분배되었다. 이 각각 부족들은 탑(塔)을 만들어 그곳에 유골을 모셨는데, 이것을 근본 8 탑(根本八塔)이라 한다. 유골을 분배받지 못한 부족은 유골을 담았던 병을 가지고 가서 병탑(甁塔)을 세웠고, 어떤 부족은 재를 가지고 가서 회탑(灰塔)을 세웠다.
탑은 산스끄리뜨어( स्तूप스뚜빠 )stūpa를 소리 나는 대로 적은 탑파(塔婆)의 준말이다. 스투파는 ‘유골을 안치하고 흙이나 돌로 높이 쌓아 올린 무덤’이라는 뜻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탑을 세울 때에 정확한 규칙과 형식에 의거했고 규칙이 신앙이었다면, 형식은 예술이었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탑을 해체 할때마다 쏟아져 나오는 부장품으로 짐작할 수 있다. 오래된 경전이 있고, 장인의 손길이 닿은 불상도 있다. 마치 타임머신을 타고 과거로 돌아감직 한 것이다.
경천사지 10층석탑
경천사는 경기도 개풍군 광덕면 부소산에 있던 절로 고려시대 전기에 창건된 것으로 추정된다. 절터에 세워져 있었던 이 탑은 일제강점기에 일본의 궁내대신 다나까 미스야끼가 일본으로 무단으로 반출되었던 것을 미국인 호머 헐버트와 베델의 끈질긴 반환 노력으로 1918년 되돌려 받아 1960년에 경복궁으로 옮겨 세워 놓았다가 현재는 국립중앙박물관에서 전시 중이다.
석탑의 3단으로 된 기단(基壇)은 위에서 보면 아(亞) 자 모양이고, 그 위로 올려진 10층의 높은 탑신(塔身) 역시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 자 모양이었다가, 4층에 이르러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기단과 탑신에는 화려한 조각이 가득 차 있는데, 부처, 보살, 풀꽃무늬 등이 뛰어난 조각수법으로 새겨져 있다. 4층부터는 각 몸돌마다 난간을 돌리고, 지붕돌은 옆에서 보아 여덟 팔(八) 자 모양인 팔작지붕 형태의 기와골을 표현해 놓는 등 목조건축을 연상케 하는 풍부한 조각들이 섬세하게 새겨져 있다. 탑의 1층 몸돌에 고려 충목왕 4년(1348)에 세웠다는 기록이 있어 만들어진 연대를 정확히 알 수 있다. 새로운 양식의 석탑이 많이 출현했던 고려시대에서도 특수한 형태를 자랑하고 있으며,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다는 점도 특이하다. 전체적인 균형과 세부적인 조각수법이 잘 어우러진 아름다운 자태로 눈길을 끌며, 지붕돌의 처마가 목조건축의 구조를 그대로 나타내고 있어 당시의 건축양식을 엿볼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된다. 이러한 양식은 이후 조선시대에 이르러 서울 원각사지 십 층 석탑(국보)에 영향을 주기도 하였다.
서울 원각사지 십 층 석탑 (서울 圓覺寺址 十層石塔)
원각사는 지금의 탑골공원 자리에 있었던 절로, 조선 세조 11년(1465)에 세웠다. 조선시대의 숭유억불정책 속에서도 중요한 사찰로 보호되어 오다가 1504년 연산군이 이 절을 ‘연방원(聯芳院)’이라는 이름의 기생집으로 만들어 승려들을 내보냄으로써 절은 없어지게 되었다.
이 탑은 조선시대의 석탑으로는 유일한 형태로, 높이는 약 12m이다. 대리석으로 만들어졌으며 탑 구석구석에 표현된 화려한 조각이 대리석의 회백색과 잘 어울려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탑을 받쳐주는 기단(基壇)은 3단으로 되어있고, 위에서 보면 아(亞) 자 모양이다. 기단의 각 층 옆면에는 여러 가지 장식이 화사하게 조각되었는데 용, 사자, 연꽃무늬 등이 표현되었다. 탑신부(塔身部)는 10층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3층까지는 기단과 같은 아(亞) 자 모양을 하고 있고 4층부터는 정사각형의 평면을 이루고 있다. 각 층마다 목조건축을 모방하여 지붕, 공포(목조건축에서 처마를 받치기 위해 기둥 위에 얹는 부재), 기둥 등을 세부적으로 잘 표현하였다.
우리나라 석탑의 일반적 재료가 화강암인데 비해 대리석으로 만들어졌고, 전체적인 형태나 세부구조 등이 고려시대의 경천사지 10층석탑과 매우 비슷하여 더욱 주의를 끌고 있다. 탑의 윗부분에 남아있는 기록으로 세조 13년(1467)에 만들어졌음을 알 수 있으며, 형태가 특이하고 표현장식이 풍부하여 훌륭한 걸작품으로 손꼽히고 있다.
(출처: 사진, 해설, 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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