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령 성주사지 오층석탑 (保寧 聖住寺址 五層石塔)
성주사는『삼국사기』에 나오는 백제 법왕 때 창건한 오합사(烏合寺)가 이 절이었다고 하며, 통일신라 문성왕대에 당나라에서 돌아온 낭혜화상이 이 절의 주지가 되어 번창시키니 왕이 ‘성주사’라는 이름을 내려주었다 한다. 임진왜란 때 불에 타서 현재는 절터만 남아 있다.
이 절의 금당터로 보이는 곳의 앞에 서 있으며, 뒤로 3층 석탑 3기가 나란히 서 있는데, 서로 층수만 다를 뿐 만든 솜씨는 비슷하다. 탑은 2단의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은 각 면마다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새겨두었으며, 기단의 위로는 탑신을 괴기 위한 편평한 돌을 따로 끼워 두었다. 탑신은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하나의 돌로 되어 있고, 각 면의 귀퉁이에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으며, 추녀밑은 수평을 이루다가 위로 살짝 치켜 올라갔다.
전체적으로는 통일신라시대 탑의 전형적인 모습이나, 1층 몸돌 아래에 괴임돌을 따로 끼워둔 것은 고려석탑으로 이어지는 새로운 형식이며, 통일신라 후기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각 층의 구성이 짜임새가 있으며 우아한 모습이다.
진전사지삼층석탑
진전사의 옛터에 서 있는 3층 석탑이다. 진전사는 8세기 후반 통일신라시대에 도의국사가 창건한 절이라 전하는데, 터 주변에서 ‘진전(陳田)’이라 새겨진 기와조각이 발견되어 절의 이름이 밝혀졌다.
탑은 통일신라의 일반적인 모습으로, 2단의 기단(基壇)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려 놓은 모습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날아갈 듯한 옷을 입은 천인상(天人像)이 있으며, 위층 기단에는 구름위에 앉아 무기를 들고 있는 웅건한 모습의 8부신중(八部神衆)이 있다. 탑신의 몸돌과 지붕돌은 각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는데, 1층 몸돌에는 각기 다양한 모습의 불상 조각들이 있다. 지붕돌은 처마의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려져 있어 경쾌한 아름다움을 보여주며, 밑면에는 5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3층 지붕돌 꼭대기에는 받침돌만 남아있을 뿐 머리장식은 모두 없어졌다.
전체적으로 균형이 잡혀 있으면서 지붕돌 네 귀퉁이의 치켜올림이 경쾌한 아름다움을 더해주는 이 탑은 통일신라시대의 대표적인 석탑 가운데 하나이다. 기단에 새겨진 아름다운 조각과 1층 몸돌의 세련된 불상 조각은 진전사의 화려했던 모습을 떠올리게 한다.
영암사지삼층석탑
영암사터는 황매산(黃梅山) 남쪽 기슭에 있는 신라시대의 절터이다. 절의 창건연대는 알려지지 않았으나 1014년에 적연선사(寂然禪師)가 이 곳에서 입적했다는 기록이 있어 그 이전에 세워진 것으로 짐작된다. 절터에는 석탑을 비롯하여 쌍사자석등, 귀부 등 각종 석조유물이 남아 있다.
이 탑은 탑신부가 무너져 있던 것을 1969년에 복원하였으며, 현재 금당 앞에 새로 세운 두 채의 건물사이에 서 있다. 2단의 기단(基壇) 위에 세워진 3층석탑으로 통일신라석탑의 전형양식을 따르고 있다.
기단은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 모양을 본떠 새겼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이 각각 한 돌로 되어 있고, 몸돌에는 모서리에 기둥을 새겼다. 1층 몸돌이 약간 높은 편이며 2·3층은 크게 줄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씩이고, 처마 밑이 수평이며 지붕의 경사가 완만한 곡선으로 흘러내려 네 귀퉁이에서 살짝 치켜 올라갔다. 탑의 머리장식부분은 전부 없어졌으나, 3층 지붕돌의 윗면에 쇠막대를 끼우던 구멍이 있다.
성주 법수사지 삼층석탑은 신라 애장왕(800~809년) 때 창건한 법수사지(法水寺址) 내에 위치하고 있으며, 사지는 가야산 계곡을 석축으로 단을 조성하여 자리 잡고 있다.
사역은 남북 150m, 동서 150m 정도이고 크게 세 단으로 나뉘어져 있다. 금당지로 추정되는 축대 아래에는 백운동마을이 자리잡고 있으며, 마을 앞에는 당간지주가 고목의 뿌리에 일부 쌓여 있다.
석탑의 높이는 5.8m이며, 상․하 2층 기단에 3층의 탑신부를 올린 양식으로 노반 이상의 상륜부는 남아 있지 않으나 보존 상태는 대체로 양호하다.
석탑은 규모가 작아지고 하층기단이 높고, 안상이 음각된 점 등의 9세기 후반기 특징을 보이고 있으나 옥개석의 층급받침이 5단인 점 등은 전형적인 신라 석탑의 모습을 보이고 있어 사찰의 창건시기인 9세기에 조성된 것으로 추정된다.(글:출처-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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