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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경남의 사찰

월아산 청곡사-108

by 돛을 달고 간 배 2006. 11.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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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곡사는 진주 지역에서는 가장 오래되고 가장 많은 지정문화재를 보유하고 있는 사찰로서 국보 제302호 괘불을 비롯하여 보물 제1232호 제석-범천상,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호 삼층석탑,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51호 대웅전,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261호 괘불함,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48호 금강역사상, 경상남도유형문화재 제349호 영산회상도, 경상남도문화재자료 제139호 업경전 등이 있다.

신라49대 헌강왕(憲康王) 5년(879) 도선국사(道詵國師)가 창건한 것으로 사찰을 창건하게 된 동기는 남강변에서 청학(靑鶴)이 날아와 서기(瑞氣)가 충만함을 보고 절터로 정하였다고 전하여 내려오고 있으며, 그후 고려말(高麗末) 우왕 때 실상사장로(實相寺長老) 상총대사(尙聰大師)가 중건했다.

1397년 태조 6년 이 고장 출신인 신덕왕후가 태조의 왕비가 된 것을 기리기 위해 승려 상총이 이 절에 머물면서 대장경을 만들었는데, 이때 김사행 등은 향로를 만들었다.

임진왜란때 불탄 것을 광해군 때에 복원하여 오늘에 이름.대웅전은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며, 건물의 형식은 단층 팔작지와 붕가(瓦家)로서 다포계 계통을 따르고 있으며 정면 3칸, 측면 2칸으로 활주(活柱)를 받쳐 보강하고 있다.

대웅전(大雄殿)에 봉안한 석가삼존상(釋迦三尊像)은 광해군 7년(1615)에 조성된 불상으로 임진왜란이후 불상으로는 비교적 대작에 속한다.




월아산은 일명 달음산이라고도 하며 1995년 진양군과 진주시가 통합되기 이전 진양군립공원으로 지정되었다. 월아산은 산이 구릉을 이루고 있지만 숲이 아름다운 아담한 산으로 험하지 않아서 가족단위의 등산객들이 주말을 이용해 즐겨 찾는 산이다. 정상은 장군대(482m)이다. 장군대는 옛부터 금산, 문산, 진성면 주민들이 가물 때 기우제를 지내던 곳이다.


월아산이 더욱 아름다운 것은 서쪽 기슭 금산 못에 달 뜨는 풍경인데 여자의 유방처럼 봉긋한 두봉 사이로 솟아 오르는 보름달은 월아산을 1,000m나 넘게 만든다. 월아산에는 동쪽에 천용사, 남쪽에 두방사가 있지만 서쪽에 있는 청곡사로 더욱 더 잘알려져 있는 산이다. 절 주위에는 울창한 숲과 차나무가 자생하고 있다.


청곡사는 신라 49대 헌강왕 5년(879) 도선국사가 창건한 것을 사찰을 창건하게 된 동기는 남강변에서 청학이 날아와 서기가 충만함을 보고 절터로 정하였다고 전하여 내려오고 있으며 그후 고려말 우왕 때 실상사장로 상총대사가 중건 하였으나 임진왜란 때 불탄 것을 선조,광해년간에 복원한 것으로 경남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인근의 금호지는 울창한 소나무숲과 맑고 깨끗한 남강을 끼고 있으며 신라시대에 축조되었다.


산행은 청곡사에서 시작되며 진주에서 반시간 거리이고, 청곡사에서 정상까지는 1시간이면 오를 수 있다. 문산읍에서 시작해 장군대-재상봉- 남강으로 이어지는 종주코스는 5-6 시간정도 소요된



누구라도 들려 주세요.......누구를 위해서라도... 저 종소리로 나의 번뇌 마저 실어 갔으면.....

석가삼존불상을 모시고 있는 대웅전(시도유형문화재51호)은 광해군(재위 1608∼1623) 때에 다시 지어졌다.

앞면 3칸·옆면 2칸 규모의 건물로, 지붕 옆면이 여덟 팔(八)자 모양인 팔작지붕집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면서 장식을 겸하는 공포가 기둥 위와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계 건물이다. 가운데 칸은 옆의 양쪽 칸보다 다소 간격은 넓으나 공포가 놓인 간격은 가운데 칸과 양 옆칸 모두 같다. 내부에 모셔진 석가삼존불상은 광해군 7년(1615)에 만들어진 것으로 임진왜란 이후에 만들어진 것으로는 비교적 큰 불상에 속한다.

청곡사 대웅전은 경상남도 지방에 남아있는 건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꼽히고 있다



영산회상이란 석가모니가 인도에 있는 영취산에서『법화경』을 설한 법회모임을 말한다. 그러나 시대를 지나면서 영산회상의 개념은 석가의 설법자체를 의미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이 그림은 영산회상을 이 땅에 실현하고자 하는 강한 신앙심의 구체적 표현이기도 하다.

‘영산회상도’는 대웅전이나 영산전의 불상 뒤편에 봉안되는 것이 보통이다. 영산회상은 일반적으로 석가여래를 중심으로 좌우에 2대 또는 4대·6대·8대 보살과 10대 제자, 불법을 지키는 선신들로 구성된다.

청곡사 대웅전의 후불탱화로 제작된 ‘영산회상도(유형문화재349호)’는 길이 410㎝, 폭 273㎝로, 항마촉지인을 한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지옥을 다스리는 시왕상이 그려진 대작이다. 비단 바탕에 화려하게 채색된 이 그림은 조선 영조 26년(1750)에 제작된 것으로 내용이나 규모면에서 보기 드문 불화이다.

청곡사 대웅전 왼편에 서 있는 석탑(시도유형문화재5호)으로, 2층 기단(基壇)에 3층 탑신(塔身)을 올리고 정상에 머리장식을 얹은 형태이며, 석재가 많이 닳아 있다.

기단은 윗돌 일부가 파손되었고, 기단과 탑신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이 새겨 있다. 지붕돌은 밑면의 받침이 4단씩이고, 3층 지붕돌 위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받침),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 앙화(仰花:솟은 연꽃모양의 장식), 보주(寶珠:꽃봉오리모양의 장식) 등의 머리장식이 남아있다.

전체적으로 통일신라시대 석탑의 일반적 양식을 잘 따르고 있으나, 각 부분에 나타나는 양식상의 변화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에 세운 탑으로 추정된다.



선불장이란 말은 선가귀감에 나오는데 부처를 선발하는

시험장이란 말인데

치열한 구도와 수행으로 도를 이룬다는 곳이다.

청곡사 가람의 전경



금강역사는 불교의 수호신 중의 하나로, 다른 말로 ‘인왕역사’라고도 한다. 보통 사찰 문의 양쪽에 서 있는데, 왼쪽은 밀적금강, 오른쪽은 나라연금강이다. 금강의 머리부분에는 언제나 둥근 빛을 표현하는데, 그것은 이들 신이 단순히 힘만 센 것이 아니라 지혜 또한 뛰어나다는 사실을 묘사한 것이다. 또한 나라연금강은 입을 벌려 ‘아’하고 소리치는 듯한 형상을 하여 ‘아금강역사’라고 하고, 밀적금강은 입을 굳게 다물고 있기 때문에 ‘음금강역사’라고도 부른다. 이 ‘아’와 ‘음’은 범어의 첫 글자와 끝 글자이다. 그러므로 이 금강역사의 입은 처음과 끝을 연결하는 영원과 통일을 상징한다. 우리나라 금강역사상의 특징은 일본이나 중국과 달리 무섭지 않고 약간의 민화적 형상을 취한다는데 있다.

이곳 청곡사 업경전 안의 좌·우에 서 있는 금강역사상(시도유형문화재348호)은 나무로 만든 것으로, 명부시왕의 수호신 역할을 하는 문지기상이다. 대형 괴목에 이음새 없이 조각된 사실적인 조각수법이 뛰어나 신체의 생동감을 잘 전해주고 있다. 조선시대 후기 작품으로 불교 조각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일 뿐만 아니라, 드물게 나무로 만들었다는 점에서 더욱 귀중하다



청곡사는 통일신라 헌강왕 5년(879)에 도선국사가 세웠으며, 임진왜란 때 완전히 소실된 것을 광해군 때 다시 세웠다.

업경전(시도유형문화재139호)은 청곡사를 세울 당시 대웅전 옆에 부속 건물로 지었는데 조선말 포우대사가 보수하였다.

명부전·지장전이라고 불리우는 업경전은 앞면 3칸·옆면 1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는 새 날개 모양으로 짠 익공 양식으로 꾸몄다.

건물 안쪽 천장은 우물 정(井)자 모양으로 천장 속을 가린 우물천장이고 지장보살을 중심으로 10명의 명부왕을 모시고 있다.


국보 302호

석가가 설법하는 장면인 영산회상도를 그린 괘불이다. 괘불이란 절에서 큰 법회나 의식을 행하기 위해 법당 앞뜰에 걸어놓고 예배를 드리는 대형 불교그림을 말한다.

길이 10.4m, 폭 6.4m 크기의 이 괘불은 본존불인 석가를 중심으로 양옆에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이 배치되어 있다. 화면 중심에 꽉 차게 배치되어 있는 석가는 얼굴이 둥글고 풍만한 모습에 상체는 짧지만 당당하고 우람하게 표현되었다. 두 어깨에 걸친 옷은 중후하게 묘사하였는데, 가슴을 과감히 노출시킨 점이 눈에 띈다. 옷은 붉은색과 녹색으로 채색하였고 옷깃에도 변화를 주었으며 전면에 걸친 꽃무늬 장식이 밝고 선명해 보인다.

석가 좌우에 있는 문수보살과 보현보살은 연꽃가지를 들고 서 있다. 본존보다 약간 작은 신체, 화려한 보관, 둥근 얼굴, 정면을 향한 자세 등이 매우 당당하고 화려하며 본존 뒤로 물러서게 배치해 원근감을 나타냈다. 청색, 하늘색, 연분홍색 등이 다양하게 나타나고 복잡하고 화려한 꽃무늬와 장신구가 보살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보살의 머리 위에는 석가의 제자인 아난, 가섭을 비롯해 여러 불상이 그려져 있다.

조선 경종 2년(1722)에 승려화가인 의겸(義謙) 등이 참여하여 제작된 이 괘불은 석가불, 문수보살·보현보살을 화면 가득 배치한 구도, 당당하고 건장한 체구, 둥글고 원만한 얼굴, 화려하고 밝은 색채와 꽃무늬 장식 등에서 18세기 초반의 불화 가운데 뛰어난 작품으로 평가된다. 석가·문수·보현의 삼존불입상이라는 점에서 예천 용문사의 괘불도와 비교되며, 의겸의 작품 가운데 가장 우수한 것이라 보여져 불교회화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되는 매우 가치있는 작품이다.


오가는 모든 인연으로 세상에 좋은 인연을 받으시라.......

제석천과 대범천은 원래 브라만 또는 힌두교의 신상(神像)이었으나, 대승불교 이후 불법을 지키는 신상이라 여겨 사천왕상 등과 더불어 불교미술에 있어 중요한 위치를 차지해 왔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우리나라에서는 조각상이 아닌 그림으로 그려졌다고 전하며, 조선시대 탱화에서 주로 예를 찾아볼 수 있으나 조각상으로는 청곡사의 것이 유일하다.

사천왕상이 위엄을 나타내는 무서운 인상임에 비해 제석·대범천상은 보살상같은 자비로운 인상이다. 탱화의 경우 보살은 양손에 물건을 들고 그 기능을 상징적으로 표현한 것과 얼굴이 금색인데 비해, 제석천과 대범천은 두 손을 합장한 경우가 많고 얼굴에 호분으로 흰색을 칠하고 있다. (자료 문화재지식정보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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