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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경남의 사찰

용암사지의 석불과 부도-107

by 돛을 달고 간 배 2006. 11.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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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 시골의 폐가 마냥 들어 가기가 망설어 졌다.



쌍조문....무얼 비추는가....중생심과 보살심?



농가집장판각.....경전을 보관한 곳 같는데....









원래는 용암사터의 서북쪽에 있던 탑으로, 파손되었던 것을 1962년에 원래의 위치로 옮겨 복원하였다. 바닥돌, 기단(基壇)의 가운데 부분, 탑신(塔身) 등이 파손되어 이 부분들을 새로 만들어 놓았다. 특히 기단의 가운뎃돌에는 구름과 용이 조각되어 있었으나 새로 보충된 것에는 간략하게 모서리기둥만 새겨 아쉬움을 주고 있다.

기단은 아랫돌 각 면에 구름무늬를 깊게 새기고 그 안에 불법을 수호하는 천부상(天部像)을 도드라지게 조각하였는데 그 수법이 우수하다. 연꽃무늬를 새긴 기단의 끝부분을 지나 탑신의 지붕으로 올라가면 얇은 지붕돌 밑에 똑같은 테두리의 평평한 받침이 눈에 띈다. 지붕선의 끝은 추녀선과 만나는 곳에서 돌출된 꽃장식을 만들고 있다. 경사면은 완만하고 꼭대기에는 연꽃무늬가 얇은 띠로 둘러져 있다. 머리장식부분은 석탑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상징적인 의미가 있다는 구조물들이 차례로 올려져 있다.

누구의 사리탑인지는 분명하지 않지만 고려 전기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전체적으로 비례가 잘 맞고 모든 부재가 8각으로 조성되어 기본형을 따르고 있다. 사리탑 주위에는 석불, 석등, 석탑의 부재가 함께 터를 지키고 있다. (보물372호)





수성암의 절벽 사이에 자리잡고 있는 용암사터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불상으로, 지옥에서 고통 받고 있는 중생을 구제한다는 지장보살을 표현한 것이다.

머리에 쓰고 있는 두건은 어깨까지 내려왔으며, 이목구비가 단정한 타원형의 얼굴은 오른쪽 뺨이 깨졌으나 눈가에 어린 미소가 불성(佛性)을 충분히 느끼게 할 만큼 온화하다. 양쪽 어깨를 감싸고 있는 옷은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되었는데, 옷깃은 두꺼우며, 옷주름은 선으로 처리하여 신체를 부각시키고 있다. 이러한 특징은 고려 초기에 유행했던 양식으로 두건 쓴 모습과 더불어 당시의 지장보살상의 실례로 주목되고 있다.

무릎은 비교적 넓고 높직하며, 무릎 위에 두 팔굽을 짚고 두 손을 맞잡았는데, 왼손이 오른손을 감싸고 있어서 상체가 사다리꼴을 이루고 있다. 옷 속에 드러난 신체는 부푼 느낌이 들지만 탄력이나 양감이 느껴지지는 않는다.

전체적인 조각수법으로 고려 초기에 만들어진 작품으로 추정된다. (유형문화재 4호-진주시)






편액의 내용으로 보아서 유교적인 색채가 농후하다....억불 정책의 일환으로 사찰이 유생들에게 터를 빼앗긴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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