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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

탑과 석등 이야기-45(강원)

by 돛을 달고 간 배 2024. 4.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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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선 용탄리 석탑/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용탄리 석탑은 용탄1리 벽탄 마을 내 ‘벽절’이라 불렸던 사찰 안에 있었으나 홍수로 사찰이 유실되고, 그 이후 1900년대 중반에 현재의 위치로 이전되었다. 사찰의 규모, 연혁 등은 기록이 발견되지 않아 사찰 조성 시기와 소실 시기를 알 수 없다.
석탑은 높이 185㎝의 규모인데 콘크리트로 조성된 높은 지대 위에 기단을 놓고 상면에 탑신을 놓았다. 현재는 2층까지 남아있으며 본래는 3층 석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기단갑석 상면에 연화문이 조식되어 있고 1층 옥개석 아랫면의 연화문과 탑신에 조각된 여래좌상이 특징적이다. (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홍천양덕원삼층석탑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원래 고래 후기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3층석탑이나 2005년 도난되어 지대석만 남아 있다.
1층 탑신석만이 하나의 돌이고 나머지는 아래층의 옥개석과 윗층의 탑신석이 같은 돌로 만들어졌는데 옥개석의 파손이 심하였다. 석탑 주변에 다수의 기와편이 확인되어 절터로 추정되고 있으나 구체적으로 밝혀진 것은 없다.
태조(이성계)가 도읍지를 찾아 다니던 중 이곳을 지니다가 땅의 모양이 용의 형상이므로 머지않아 재앙이 미칠 것을 예상하여 용의 머리에 해당하는 부분에 절을 짓고 이 탑을 세워 재앙을 미리 막았다는 전설과 이 석탑을 옮기면 마을에 재앙이 생긴다는 전설이 함께 전해지고 있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수타사삼층석탑/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수타사에 있는 석탑으로, 1층 기단(基壇) 위로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에는 아무런 장식을 하지 않았고, 2·3층 몸돌이 없어진 탑신은 남아 있는 1층 몸돌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얕게 새겨 놓았다.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뾰족하게 치켜 올려갔고, 밑면에 1 ·2층은 3단, 3층은 2단의 받침을 각각 두었다. 고려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측되고 있으며, 전체적으로 각 층의 지붕돌 너비가 거의 줄지 않고 있어 원래는 높고 날렵한 큰 규모의 탑이었을 것으로 보인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괘석리삼층석탑/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이다.
탑신부는 1층 몸돌만 한 돌로 되어있고 그 위는 1층 지붕돌과 2층 몸돌, 2층 지붕돌과 3층 몸돌, 3층 지붕돌과 꼭대기의 머리장식 받침돌이 각각 한돌로 이루어져 있다. 1층 몸돌에는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고, 두꺼운 지붕돌은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고려시대 중기 이후의 석탑양식을 보여주는 탑이다. 고려 때 수타사(壽陀寺)에서 세웠다고 전하고 있으며, 관(官)에서 탑을 옮기려 하다 호랑이가 나타나 길을 막는 바람에 옮기지 못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오고 있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장남리삼층석탑/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주변에 흩어져 있던 석탑의 각 부분들을 수습하여 쌓아 올린 것으로, 땅 위에 막돌과 길다란 돌 2개를 깔아 바닥돌을 삼고, 그 위에 아래층 기단(基壇) , 위층 기단, 탑신(塔身)의 1층 몸돌, 지붕돌 3개를 순서대로 올려 놓았다.
아래층 기단의 각 면에는 2개씩의 안상(眼象)을 새겨 놓았고, 위층 기단에는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두툼한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위로 뾰족하게 치켜 올라갔으며, 밑면에는 2단의 받침을 두었다.
고려시대 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입석사석탑/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입석사에 있는 탑으로 무너져 있던 것을 세워 둔 것인데, 2기의 석탑 부재가 섞여 있는 듯 하다.

부재들은 두툼하고 네모난 연꽃받침이 2개, 얇은 연꽃받침이 1개, 각 면에 기둥 모양을 새긴 탑신(塔身)의 몸돌이 3개, 네모난 판돌이 4개이다.

연꽃무늬 조각이나 탑신의 몸돌을 다듬은 솜씨로 보아 고려시대 전기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조선 태종(재위 1400∼1418)이 왕위에 오른 후 어린 시절의 스승 운곡 원천석을 자주 불렀으나 응하지 않고 치악산에 들어가 은둔생활을 하며 나타나지 않으니, 그를 생각하며 이 탑을 세우게 되었다는 이야기가 함께 전해 내려온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주포리미륵불및삼층석탑/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황산사의 옛 터에 남아 있는 3층 석탑과 이 터에서 멀리 떨어진 뒷산의 높은 봉우리에 조각되어 있는 불상이다.
석탑은 절터에 흐트러져 있던 것을 다시 세워놓은 것으로, 전체의 무게를 지탱해주던 기단(基壇)이 없어진 채 3층의 탑신(塔身)만 남아있다. 탑신의 각 몸돌은 모서리마다 기둥 모양을 본 뜬 조각을 두었다. 두터워 보이는 지붕돌은 3단씩의 받침을 밑면에 새겼으며, 처마는 수평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느리게 위로 들려있다. 3층 지붕돌 위에는 꽃봉오리 모양을 한 큼직한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두꺼운 지붕돌에 비해 몸돌이 가늘고 높아 전체적으로 길쭉한 느낌을 주고 있으며,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추측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주천삼층석탑/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으로, 흥령사라는 절을 처음 지을 때 이 절을 안내하기 위해 세운 3기의 탑 중 하나로 전하고 있다.
기단은 일부 떨어져 나갔으며, 각 면의 가운데와 모서리마다 기둥을 본 떠 새겨 놓았다. 아래층 기단의 맨 윗돌에는 알구멍<성혈(聖穴)>같은 구멍이 3군데 있고, 윗면에는 연꽃무늬가 장식되어 있다. 탑신은 1층 몸돌에만 기둥 모양을 새겼다. 2층 지붕돌은 끝부분이 깨져 있는데, 그 탓에 3층 지붕돌이 더 커보여 마치 다른 탑의 것을 끼워놓은 것처럼 보인다.
흥령사 창건 당시에 만든 것으로 전하고 있으나, 각 부분의 비례가 잘 맞지 않고, 2·3층 몸돌에 기둥을 새기지 않은 점 등으로 보아 고려말·조선초에 세운 것으로 짐작된다. 원래는 강기슭에 있었던 것을, 둑을 쌓으면서 지금의 자리로 옮겨 놓았는데, 이 때 탑 안에서 금동불상을 발견하였다고 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유동리오층석탑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1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석탑이다.
기단의 밑돌과 맨 윗돌 윗면에는 연꽃을 조각하였다. 네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고, 북쪽면에는 도깨비 얼굴 모습, 서쪽면에는 형체를 알 수 없는 형상의 조각이 있으며, 남쪽면에는 감실(龕室:불상을 모셔두는 방)을 파놓았다. 탑신은 1층 몸돌과 5층 지붕돌을 제외하면 모든 지붕돌이 위층의 몸돌과 한돌로 되어있다. 각 층의 몸돌에는 기둥모양을 새겨 놓았고 특히 1층 몸돌 남쪽면에는 문모양과 자물쇠가 조각되어 있다. 도톰한 지붕돌은 낙수면의 경사가 급하고, 네 귀퉁이에서 뾰족하게 치켜올라 갔으며, 밑면에 3단씩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후대에 만든 연꽃봉오리 모양의 머리장식이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1층 몸돌에 비해 2층 몸돌이 급격히 줄어들고 그 이상은 거의 줄지 않아 고려시대에 세운 탑으로 짐작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상동리삼층석탑및석불좌상/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인제군 남면 신남리의 암자에 있던 석탑과 석불좌상으로, 소양강댐을 만들면서 백련정사(白蓮精寺)로 옮겨왔다.
탑은 2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인데, 현재 탑신은 2층까지만 남아있다. 아래층 기단은 없어진 부재가 많아 원래 모습을 정확히 알 수 없고, 위층 기단에는 각 면마다 기둥 모양을 조각하였다. 탑신은 1·2층 몸돌의 높이가 비슷하여 독특한 모습이고, 급한 경사를 보이는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올라 갔으며 밑면에는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으로 보이는 둥근 모양의 돌이 놓여 있다. 전체적으로 보아 원래 3층 이상의 탑이었을 것으로 추정되며 고려시대의 것으로 보인다.
석불좌상은 불상의 어깨 윗부분이 잘려나가 현재는 시멘트로 머리부분을 만들어 놓았다. 연꽃받침 위에 앉아 있는 모습으로, 전체적으로 심하게 닳아 있어 자세한 모습을 알 수 없다. 어깨 곡선이 부드러우며 두손을 가슴에 모으고 있는 것으로 보아 비로사나불상으로 추정되고 있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강릉산계리석탑 /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탑의 기단부(基壇部)는 일부만 남아있어 원래의 구조를 알 수 없고, 현재의 기단은 새로운 돌을 끼워 만들어 놓은 것이다. 탑신부(塔身部)는 몸돌과 지붕돌을 각각 다른 돌로 만들었는데, 지붕돌은 낙수면이 밑면의 받침부분보다 훨씬 두껍고, 급한 경사가 흐른다. 1층 지붕돌은 밑면에 4단의 받침을 두었고 네 귀퉁이에 방울을 달았던 구멍이 보이는데, 2·3층 지붕돌은 많이 닳아서 인지 원래의 모습을 찾아보기 어렵다. 꼭대기에는 노반(露盤:머리장식 받침), 복발(覆鉢:엎어놓은 그릇모양의 장식)이 있고, 보륜은 한 개가 남아 머리장식을 하고 있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인제갑둔리오층석탑및주변탑재일식/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인제군 남면 갑둔리 및 상남면 상남리에 흩어져 있는 석탑 및 탑의 일부분으로, 모두 3기에 이른다.

첫번째는 갑둔리 5층 석탑으로, 2층 기단(基壇) 위에 5층의 탑신(塔身)을 올리고 있는데, 탑신의 1·2·3층 몸돌과 5층 지붕돌은 탑을 복원할 때 새로 만들어 끼워 넣은 것이다. 아래층 기단에는 안상(眼象)을 조각하고 위층 기단에는 기둥모양과 글을 새겨 놓았다. 탑신의 각 층 지붕돌은 네 귀퉁이가 살짝 치켜 올라 갔으며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위층 기단에 고려 정종 2년(1036)이란 기록이 있어 고려시대 석탑 및 불교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

두번째는 갑둔리 3층 석탑으로, 갑둔초등학교에서 700m 정도 떨어진 곳에 놓여 있다. 지금의 자리에 일부 남아 있던 기단과 갑둔초등학교에서 보관하던 탑신부로 1988년 새로이 복원해 놓았는데, 돌의 재질·양식·크기가 달라 각기 다른 석탑의 부재로 보인다. 현재 탑신부는 2층 지붕돌과 3층 몸돌이 없어진 상태이다. 각 층의 몸돌에는 기둥 모양을 새겼다. 지붕돌은 두툼한 처마가 완만한 곡선을 이루다 네 귀퉁이에서 힘껏 치켜 올라갔고, 밑면에 3단의 받침을 두었다. 일부 탑재를 잃어버렸지만 지붕돌의 양식으로 보아 고려시대에 세운 탑으로 보인다.

세번째는 상남리 석탑재로, 아래층 기단 조각, 위층 기단 가운데돌, 탑신의 1층 몸돌, 몸돌 조각, 지붕돌 조각 등 다섯 부분이다. 이 탑재들은 기단부와 지붕돌 양식으로 볼 때 통일신라 후기의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현재 남아 있는 부재로는 원형복원이 불가능하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양양서림사지삼층석탑/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상평초등학교 현서분교 운동장 반대편 건물 뒷쪽에 서 있는 탑으로, 원래는 이곳에서 동쪽으로 약 200m 떨어진 논에 있던 것을 1965년 옆에 있는 서림사지석조비로자나불좌상(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과 함께 이곳으로 옮겨 보존하고 있다.
탑은 1층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올린 모습이다. 기단과 탑신의 1·2층 몸돌 모서리에는 기둥 모양을 새겨 놓았다. 급한 경사가 흐르는 지붕돌은 둔하고 무거워 보이는데, 네 귀퉁이가 경쾌하게 들려있어 무거운 맛을 덜어주고 있으며, 밑면에는 1·2층은 4단, 3층은 3단의 받침을 두었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받침대역할을 하는 네모난 노반(露盤)이 3층 지붕돌과 한돌로 조각되어 있다.
몸돌의 너비가 좁고 두툼한 지붕돌이 급경사로 이루고 있어, 전체적으로 가늘고 길어 보이고 안정감이 적다. 기단과 지붕돌의 모습으로 보아, 고려시대 후기에 세운 것으로 추정된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태백 본적사지 삼층석탑/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본적사지는 일명 번적사지로도 불리는데, 이 곳 주변에는 많은 절터들이 있다. 절터 주변에는 이중기단 삼층석탑의 석탑재와 기와 조각 등이 흩어져 있다.
기단부로 발견된 탑재는 지대석(기초부에 까는 받침돌), 아래층 기단, 위층 기단의 부재이다.
아래층 기단과 위층 기단 면석(탑 기단의 받침돌과 덮개돌 사이에 막아댄 넓은 돌)에는 모서리기둥과 버팀기둥이 표현되어 있고, 갑석(뚜껑처럼 덮은 돌)에는 2단의 굄받침이 있다.
탑 몸체부는 지붕돌 2개와 몸돌 2개가 발견되었다.
지붕돌 밑면의 받침은 4단이고, 위에는 2단의 받침이 있다. 몸돌에는 모서리기둥이 표현되어 있다.
가장 작은 지붕돌에 찰주구멍이 있는 것으로 보아 삼층석탑임을 알 수 있다.
탑 위의 장식물인 상륜부는 발견되지 않았다. 같은 시기 석탑의 체감 비율을 고려하여 지대석에서부터 3층 지붕돌까지의 높이를 추정해보면 약 2.97m로 예상된다.
이 탑은 양식으로 보아 신라 말에서 고려 초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태백산 일대의 불교유적들과 함께 불교문화의 전파 경로와 시기를 추정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속초노학동삼층석탑/강원특별자치도 문화유산자료

설악산 수련원에서 달마봉 쪽으로 약 30분 정도 오르면, 한적한 절터에 이 석탑이 자리하고 있다. 이 석탑은 단층(單層) 기단(基壇) 위에 3층의 탑신(塔身)을 세운 석탑으로, 1층 탑신과 지붕돌[옥개석(屋蓋石)]은 각 하나의 돌로 만들어졌다. 2층 지붕돌과 3층 탑신, 3층 지붕돌과 노반(露盤)은 각각 1석으로 조성되었고, 2층 탑신은 없어졌다.
탑의 가장 큰 특징은 1층 탑신의 4면에 사방불(四方佛)을 조성한 점이다. 연꽃 받침 위에 원형 머리 빛[두광(頭光)]과 몸 빛[신광(身光)]을 갖춘 좌상(坐像)을 조각하였는데, 마모가 심하여 정확한 형상을 알 수는 없지만 안정감 있게 돋을새김[부조(浮彫)]되었다.
강원 영동지방의 석탑 중에서 사방불이 조각된 귀중한 석탑으로, 조성 수법으로 볼 때 고려시대 중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이 탑의 높이는 1.8m이다.
석탑을 중심으로 약 200평의 대지가 마련된 점과 기와 조각과 석축이 있는 점으로 보아 암자터로 추정된다. 신흥사(神興寺)의 부속 암자인 소림암(小林庵) 터라고도 하지만 현 위치인지는 확실하지 않다.자료출처:문화재연구소, 국가문화유산포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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