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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마경/제자품

마하 가섭

by 돛을 달고 간 배 2017. 8.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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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께서는 대가섭에게 말씀하셨다.

『그대가 유마힐을 찿아가 병을 물으라. 』

가섭이 부처님께 아뢰었다.

『세존이시여, 저는 그를 찿아 병을 묻는  일을 감당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옛날 가난한 마을에서 걸식을 하던 일을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때 유마힐이 저에게 다가와 말했습니다.』「대가섭, 자비심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이같이 부자를 버리고 가난한 사람에게서 걸식을 하는 것은 자비심을 널리 펼수 없는 일입니다. 대가섭, 평등한 법에 머물러 마땅히 순위에 따라 걸식을 해야 합니다. 먹기 위한 것이 아니라는 생각으로 마땅히 걸식을 해야하며, 다섯가지 요소에 의하여 거짓으로 뭉쳐진 육  체를 깨뜨리기 위함이니 마땅히 주먹밥을 먹어야 하며, 받지 않기 위한 까닭으로 마땅히 그 음식을 받아야 합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마을이라는 생각으로 마을에 들어가야 하며, 형상을 보아도 장님과 같이 대해야 하며, 소리를 들으면 메아리를 듣는 듯, 향내음을 맡아도 바람과 같이 맡고, 먹고도 맛을 분별하는 일이 없어야 하며, 온갖 감촉을 받아도 번뇌를 끊어버린 깨달음의 경계에서 느낀듯 해야 합니다. 또 존재하는 모든 것을 환영같이 알며, 법에는 자성과 타성도 없어 그 자체로서는 생기지 않으므로 지금도 멸하는 일이 없습니다. 대가섭, 능히 여덟가지 사도를 버리지 않고서도 여덟가지 해탈에 들고, 삿된 모습을 그대로 지닌 채 바른 가르침에 들며, 한 끼의 밥으로도 모든 중생에게 베풀며, 모든 부처와 모든 성현에게 공양한 다음 먹을 수 있어야 합니다. 만약 이와 같이 식사를 할 수 있는 사람은 번뇌가 있기 때문에 먹는 것도 아니며, 없기 때문에 먹는 것도 아닙니다. 또 무심한 경계에 들어서 먹는 것도. 무심한 경계를 벗어나서 먹는 것도 아닙니다. 미혹의 세계에서 먹는것도, 깨달음의 경계에서 먹는 것도 아닙니다. 또한 보시하는 사람에게서도 복덕에 있어서 대소가 없습니다. 득실을 떠날 때, 이것이야 말로 부처의 길에 바르게 들어간 것이며, 자기만의  생각하는 성문의 길에 의지하지 않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대가섭, 이같이 먹는다면 남의 보시를 헛되이 먹었다고 하지 않습니다.」고.

세존이시여, 그 때 저는 유마힐이 이렇게 설하는 것을 듣고서 일찍이 없었던 것을 얻었습니다. 그리고 그와 함께 모든 보살들을 공경하는 마음이 일어났습니다. 또 이렇게 생각하였습니다. 「속가에 있는 이도 변재와 지혜가 능히 이와 같구나. 그 누가 이를 듣고서 가장 높은 부처님의 깨달음을 구하는 마음-아뇩다라삼막삼보리-을 일으키지 않으랴」고.

저는 그 뒤로 다시는 사람들에게 자기의 깨달음만을 위하여 닦는 성자와 자기 혼자서 깨달음의 기쁨에 젖는 부처의 수행을 권하지 않았습니다. 이런 꺄닭으로 그를 찿아가 병을 묻기에 적당치 않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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