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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절 순례/경남의 사찰

화방사-127

by 돛을 달고 간 배 2007. 6.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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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방사는 충무공 이순신과 함께 임진왜란때 순국한 장병들의 영혼을 모시고 제사를 지냈던

호국사찰입니다. 채진루에 서있는 "이 충무공 충렬묘비" 목판비문이 호국사찰의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 목판비는 높이 3m, 폭1.6m로 나무판 앞 뒤에 충무공의 충절을 기리는

내용으로 1300여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비는 1997년 복원한 비입니다. 원래의 비는 지난

1981년 화재로 소실되었는데, 당시 탁본해 놓았던 것을 가지고 1998년 새로 복원한 것입니다.

모양과 크기는 충렬사에 입석되어 있는 비와 똑같습니다.

왜 이 비가 화방사에 있을까요. 임란과 화방사와는 어떤 관계가 있을까요.

역사 속에도 인연을 찾을 수가 없습니다.

신라 신문왕 때 원효대사가 망운산 남쪽에 연죽사를 건립한 것이 화방사의 시작입니다.

이후 고려시대 진각국사 혜심이 연죽사를 현 위치의 서남쪽 400m에 옮기고

영장사(靈藏寺)라고 이름을 바꾸었습니다. 그러나 영장사는 임진왜란 때 소실되었습니다.

그 후 서산대사의 제자인 계원과 영철 두 선사가 지금 위치에 ‘연화형국’이라는 뜻으로 절

이름을 화방사로 지었다는 기록이 전해지고 있습니다.

화방사에는 사찰이 건립되어 불상을 봉안할 때 불을 밝히는

옥돌로 만든 등잔인 옥종자 설화가 있습니다. 한번 불을 붙이면 깨뜨려서는

안 되며, 어떠한 이유에서든지 불이 꺼지면 다시 불을 붙여서는 안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이 옥종자의 불씨는 임란으로 사찰이 전소되면서 꺼져버렸습니다.

임란때 불씨가 꺼진 후 현재까지 사용하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궁금증을 풀기 위해 화방사는 5편의 중건중수기와 현판기문, 완문절목,

선생안 등을 비롯한 고문서 번역를 통해 사찰의 역사를 재조명하여 그 연유를 찾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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