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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산사- 유네스코 세계유산/봉정사

천등산 봉정사-27

by 돛을 달고 간 배 2005. 7.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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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정사는 신라 신문왕 2년(682)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만들어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 봉황이 이곳에 내려 앉아 봉정사라 불렀다고 한다.

중심 법당인 대웅전(보물55호)에는 석가모니불상을 중심으로 문수보살, 보현보살을 좌우로 모시고 있다. 1962년 해체·수리 때 발견한 기록으로 미루어 조선 전기 건물로 추정한다.

규모는 앞면 3칸·옆면 3칸이며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여덟 팔(八)자 모양을 한 팔작지붕이다.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만든 공포가 기둥 위뿐만 아니라 기둥 사이에도 있는 다포 양식인데, 밖으로 뻗친 재료의 꾸밈없는 모양이 고려말·조선초 건축양식을 잘 갖추고 있고 앞쪽에 툇마루를 설치한 것이 특이하다.

건물 안쪽에는 단청이 잘 남아 있어 이 시대 문양을 연구하는데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으며, 건실하고 힘찬 짜임새를 잘 갖추고 있어 조선 전기 건축양식의 특징을 잘 보여주고 있다.




봉정사 대웅전 앞에 있는 2층의 누각형태를 한 누문이다. 봉정사는 신라 신문왕 2년(682)에 의상대사가 세운 절이라고 한다. 전설에 의하면, 의상대사가 도력으로 만든 종이 봉황을 부석사에서 날리자 이 곳에 내려 앉아 봉정사라 불렀다고 한다.

만세루는 정면 5칸, 측면 3칸 규모로,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인 맞배지붕이다. 앞면에서 보면 2층이나 경사진 지형을 이용하여 뒷면은 단층으로 처리하였다. 아래층 가운데 칸에 출입문을 두었으며, 위층은 네모난 우물 정(井)자 모양의 우물마루 바닥에 평난간으로 둘러져 있다.

봉정사의 입구에 해당하는 누문으로 원래는 덕휘루로 불리웠으나 언제 이름이 바뀌었는지는 알 수 없다. 조선 숙종 6년(1680)에 건립된 후 여러 차례에 걸쳐 보수된 만세루는 17세기 후반의 건실하면서도 당당한 건축수법의 특징이 잘 나타나 있다.



봉정사 극락전은 최고의 목조 건축물(국보15호)로 알려져 있다.

천등산 기슭에 있는 봉정사는 신문왕 2년(682) 의상대사가 지었다고 한다. 부석사를 세운 의상대사가 부석사에서 종이로 봉황새를 만들어 날려 보냈는데, 그 새가 내려앉은 자리에 절을 짓고 봉정사라 이름지었다는 전설이 전하여 온다.

극락전은 원래 대장전이라고 불렀으나 뒤에 이름을 바꾸었다고 한다. 이 건물은 1972년 해체·수리할 때 고려 공민왕 12년(1363) 지붕을 수리하였다는 기록이 발견되어, 적어도 1363년 이전인 고려 중기(12∼13세기)에 지은 것으로 보고 있다.

앞면 3칸·옆면 4칸 크기에, 지붕은 옆면에서 볼 때 사람 인(人)자 모양을 한 맞배지붕으로 꾸몄다. 기둥은 가운데가 볼록한 배흘림 형태이며, 지붕 처마를 받치기 위해 장식하여 짜은 구조가 기둥 위에만 있는 주심포 양식이다. 앞면 가운데 칸에는 문을 달고, 양 옆칸에는 창문을 내었다. 건물 안쪽 가운데에는 불상을 모셔놓고 그 위로 불상을 더욱 엄숙하게 꾸미는 화려한 닫집을 만들었다. 또한 불상을 모신 불단의 옆면에는 고려 중기 도자기 무늬와 같은 덩굴무늬를 새겨 놓았다.

봉정사 극락전은 통일신라시대 건축양식을 본받고 있는 고려시대의 건물로 우리 나라에 남아있는 목조 건축물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봉정사 극락전의 영역에 자리하고 있는 3층 석탑이다.

2층 기단(基壇)을 쌓아 탑의 토대를 마련하고 그 위로 3층의 탑신(塔身)과 머리장식을 얹은 일반적인 모습이다. 아래·위층 기단의 각 면에는 모서리와 가운데에 기둥모양을 새겼다. 기단에 비해 폭이 좁아진 탑신부는 각 층의 몸돌 크기가 위로 갈수록 적당하게 줄어들면서도, 폭의 변화는 적다. 지붕돌도 높이에 비해 폭이 좁고 두툼하다. 꼭대기에는 머리장식의 일부만 남아있다.

각 부분에 형식화가 심하고, 지붕돌이 두툼한 점으로 보아 고려시대의 작품으로 짐작된다





봉정사 (鳳停寺)
종단: 대한불교조계종
교구: 제 16교구 말사
본가URL: http://www.bongjeongsa.org
전화번호: (054)852-6879
소재주소:
760-820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태장리 901번지

? 사찰설명:
봉정사는 대한불교조계종 제16교구 본사인 고운사(孤雲寺)의 말사입니다.

봉정사의 창건과 관련하여 많은 기록과 창건설화들이 있는데 문화재 대관에 따르면 신라 문무왕 12년(672)에 의상 스님에 의해 창건되었다고 하기도 하며, 신라 문문왕 2년(682)에 의상 스님이 부석사에서 날린 종이 봉황이 이 장소에 내려앉아 절을 세웠다는 전설이 전하고 있습니다.

1972년 9월에는 극락전 해체 보수시 발견된 기문장처(記文藏處)속의 한지 기록에 의하면 능인(能仁) 스님에 의해 창건되고 , 6대 조사들에 의하여 중수되어졌으며, 공민왕 12년(1363년)에 옥개(屋蓋)부분을 중수하였다고 되어 있어서, 봉정사 그 초창기의 역사는 적어도 12세기말 내지 13세기 초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하늘의 등(燈) 천등산(天燈山)에 자리하고 있는 봉정사(鳳停寺)는 봉황이 머물며, 천등산 줄기가 옆으로 길게 펼쳐진 능선에 기대어 앉은 가람은 좌우로 두개의 마당을 만들며 역시 옆으로 길게 펼쳐집니다.

봉정사의 가람은 산 중턱의 높은 곳에 평지를 만들어 자리잡고 있기 때문에 입구에서 입구 누각까지는 촘촘한 수많은 계단을 통해 올라야 합니다. 그러나 계단의 촉 역시 옆으로 길게 펼쳐져 있기 때문에 급하다거나 위험스런 느낌이 아니라 부처님이 계신 곳을 향해 나아가는 느낌입니다.

가득하고나 맑디맑은 기운,
낮이라 떠 있네 밤이라 떠 있네
적막하고나 구름인듯 안개인듯
멀리 가까이 죄 모였어라
? 찾아오시는길:
대중교통
서울에서는 고속버스나 기차를 이용해 안동까지 내려가고 다른 도시에서는 시외버스를 통해서도 갈 수 있다. 김포공항에서는 대한항공과 아시아나항공에서 예천으로 가는 항공편을 운행중이다. 예천에서 안동 초등학교까지는 버스(예천여객 0584-654-4444~6)로 연결된다.

현지교통
시내버스 51번, 40분 소요
안동 - 봉정사 06:00, 08:15, 14:20, 17:35, 19:00
봉정사 - 안동 07:00, 09:15, 15:15, 18:15, 19:35

도로안내
안동시-6Km-송야교(서후면입구)- 6Km-명동입구-6Km-풍산(매곡교)-예천
송야교 - 5km - 서후면사무소 - 5km - 봉정사 - 2km - 개목사

자가운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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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올림픽고속도로->대구->중앙고속도로->안동

주변명소

◀하회마을
낙동강 물줄기가 S자 모양으로 마을을 휘감는 이곳은 강물이 돌아나간다고 해서 마을 이름도 하회(河回)마을이다.
◀안동댐
댐 정상에 서면 물 안개 피어 오르는 새벽 녘의 모습도 장관이고 저녁 노을이 물 위에 걸치는 장면도 운치 있다.
◀병산서원
기암 절벽과 낙동강을 마주하고 서원을 둘러 싼 소나무 숲으로 운치를 더하는 아름다운 풍경을 담고 있다.
◀도산서원
경관이 좋은 언덕 위에 잡고 있는 데다 주변에는 안동호와 소나무 숲이 잘 어우러져 사시사철 기품을 잃지 않는다.

◀하회관광농원
볼거리는 물론 우리의 전통문화와 풍습을 이해할 수 있는 곳

◀태사묘
고려의 개국 공신 김선평, 권행, 장길 등 삼태사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는 곳이다.

◀안동민속박물관
안동 지방의 생활상이 그대로 드러나는 전시물이 놓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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