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당집

조당집 제3권 혜충국사-6

돛을 달고 간 배 2026. 2. 20.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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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가 대답했다.
“유정은 정보正報이니, 끝없는 예로부터 허망하고 뒤바뀌어 나[我]와 내 것[我所]을 계교計較하여 원한을 맺었으므로 원한의 과보가 있지만, 무정無情은 의보依報인지라 전도되고 원한을 맺은 마음이 없으므로 과보가 있다고 말하지 않느니라.”
“경전에서 유정들만이 보리의 수기授記를 받아 오는 세상에 부처가 되고, 명호는 무엇 무엇이라 하리라 한 것은 보았을지언정 무정無情들이 성불하리라는 수기를 받는 것은 보지 못했습니다. 예컨대 현겁賢劫의 천 부처님 중에 어느 분이 무정물로 성불하신 분입니까? 저에게 말씀해 주십시오.”
“내가 그대에게 묻노니, 마치 황태자가 왕위를 물려받을 때에 태자 한 몸만 왕위를 받는가, 국토 안의 전체가 왕위를 받는가?”
“황태자 하나만 왕위를 받으면 국토 안의 모든 것은 저절로 왕에게 속합니다. 어찌 따로따로 받겠습니까?”
“지금의 이 경우에도 그러하니, 다만 유정들이 수기를 받아 부처가 되기만 하면 삼천대천세계의 온갖 국토 모두가 비로자나부처님의 몸에 속한다. 부처님의 몸 이외에 어찌 또 다른 무정물이 있어 수기를 받겠는가?”

선객이 다시 물었다.
“일체 대지가부처님 몸이라면 온갖 중생들이 부처님의 몸 위에서 살면서 부처님 몸에다 똥오줌을 싸서 더럽히고, 부처님의 몸을 파고 뚫고 밟으니, 어찌 죄가 없겠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일체 중생이 그대로 부처의 몸이거늘 누가 죄를 받으랴?”
“부처님의 몸은 함이 없고 걸림이 없는데, 이제 함이 있고 걸림 있는 물질로써 부처의 몸이라 하니, 그 어찌 성인의 취지에 어긋난다 하지 않을 수 있습니까?”
“그대는 보지 못했는가? 『대품경大品經』에서 말하기를 ‘유위有爲를 떠나서 무위無爲를 말하지 말라. 또 무위를 떠나서 유위를 말하지도 말라’ 하였느니라. 그대는 색이 공함을 믿는가?”
“부처님의 진실한 말씀을 어찌 감히 믿지 않겠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색이 본래 공하다면 어찌 걸림이 있겠는가?”
선객이 또 물었다.
“부처와 중생이 같은 것이라면 한 부처님만 수행하여도 온갖 중생이 모두 함께 해탈을 얻어야 할 것인데, 지금 보니 그렇지 않습니다. 같다는 뜻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화엄경華嚴經』 가운데 6상의相義에 ‘같음[同] 가운데 다름[異]이 있고, 다름 가운데 같음이 있으며, 이룸[成] 가운데 무너짐이 있고, 무너짐 가운데 이룸이 있으며, 전체 가운데 부분이 있고, 부분 가운데 전체가 있다’ 하심을 그대는 보지 못하였는가? 확실히 제각기 스스로가 수행해서 스스로가 얻는 것이어야 한다. 남이 밥 먹는 것을 구경한다 해도 끝내 내 배가 부르지는 않느니라.”
선객이 또 물었다.
“고덕古德이 말씀하시기를 ‘푸르디푸른 대나무 모두가 진여眞如요, 성대하게 핀 국화꽃은 반야般若 아닌 것이 없다’ 했는데,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인정하지 않고 삿된 말이라 하고, 또 어떤 사람은 이 말씀을 믿어 부사의不思議하다고 하는데, 어찌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국사가 대답했다.
“이는 보현普賢ㆍ문수文殊 등 대인大人의 경지이다. 범부와 소인들이 믿어 받들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모두가 『대승요의경大乘了義經』의 뜻과 부합되나니, 그러므로 『화엄경』에서 말하기를 ‘부처님 몸이 법계에 충만하여 온갖 중생들 앞에 두루 나타나신다. 인연 따라 응하지 않는 곳 없으시지만 항상 여기 보리좌를 여의지 않으신다’ 하였다. 푸른 대나무가 이미 법계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어찌 법신法身이 아니겠는가?
또 『마하반야경摩訶般若經』에서 말하기를 ‘색色이 끝이 없으므로 반야가 끝이 없다’ 하였나니, 국화꽃이 색色에서 벗어나지 않았을진대 어찌 반야가 아니겠는가. 이 깊고 넓은 이치를 알지 못하는 이는 이 말에 유의하지 않느니라.”

또 물었다.
“어떤 선지식이 말하기를 ‘도를 배우는 사람은 다만 본마음을 알기만 하면 죽음이 닥쳐왔을 때에 한쪽으로 껍질을 훌쩍 벗어 던지고, 영대靈臺인 각성覺性만이 거뜬히 떠나는 것이 해탈이다’라고 한다 하는데, 이것은 어떠합니까?”
“이는 아직도 2승乘과 외도의 소견을 면치 못했다. 2승은 모두가 유위有爲의 생사를 싫어하여 여의려 하고 무여열반無餘涅槃을 즐겨 구한다. 노자가 말하기를 ‘나에게 큰 걱정이 있으니, 내 몸이 있기 때문이다’ 하였고, 명제冥諦를 좋아하여 지극한 도라 여기고 마침내는 명제에 나아갔다.
수다원須陀洹은 8만 겁, 사다함斯陀含은 6만 겁, 아나함阿那含은 4만 겁, 아라한阿羅漢은 2만 겁, 벽지불辟支佛은 만 겁 동안선정에 머무르고, 외도도 역시 8만 겁 동안 비상비비상천非想非非想天에 머문다.
2승乘은 그 겁劫이 차면 대승大乘으로 회향하나 외도는 그 겁이 차도 생사윤회를 면치 못하느니라.”


선객이 또 물었다.
“모든 사람들의 불성佛性은 한 종류인가요, 아니면 차별된 종류인가요?”
국사가 대답했다.
“똑같을 수가 없느니라.”
“어째서 차별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의 불성은 전혀 생멸하지 않고, 어떤 사람의 불성은 반은 생멸하되 반만 생멸하지 않느니라.”
“누구의 불성은 전부 생멸하지 않고, 누구의 불성은 반은 생멸하고 반은 생멸하지 않습니까?”
국사가 말했다.
“나의 불성은 전혀 생멸하지 않지만, 남방의 불성은 반은 생멸하고 반은 생멸하지 않느니라.”

선객이 다시 물었다.
“화상의 불성은 어찌하여 전혀 생멸하지 않고, 남방의 불성은 어찌하여 반은 생멸하고 반은 생멸하지 않습니까?”
“나의 불성은 몸과 마음이 한결같아서 몸 밖에 다른 것이 없나니, 그러므로 전혀 생멸하지 않거니와, 남방의 불성佛性은 몸은 무상하다 하고 마음은 항상하다 하니, 그러기에 반은 생멸하고 반은 생멸이 없느니라.”
“화상의 몸은 색신色身인데 어찌 법신法身과 같이 생멸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대는 어째서 사도邪道에 빠졌느냐?”
“제가 언제 사도에 빠졌다고 그러십니까?”
않으신다’ 하였다. 푸른 대나무가 이미 법계에서 벗어나지 않았으니, 어찌 법신法身이 아니겠는가?
또 『마하반야경摩訶般若經』에서 말하기를 ‘색色이 끝이 없으므로 반야가 끝이 없다’ 하였나니, 국화꽃이 색色에서 벗어나지 않았을진대 어찌 반야가 아니겠는가. 이 깊고 넓은 이치를 알지 못하는 이는 이 말에 유의하지 않느니라.”
출처: 불교기록문화유산아카이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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