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안거冬安居/현성스님 (2025-63)





🛶🛶🛶🧘♂️ 안거에 대하여
수행승들이 우기 동안 일정한 사원에 모여 연구와 종교적 대화의 시간을 갖는 전통은 남아시아의 고대 관습에서 유래하는데, 남아시아에는 고대로부터 고행자가 유행하기 어려운 우기 동안 대개 마을 근처 작은 숲 같은 곳에 머무르는 관습이 있었다. 그들은 우기 동안 그러한 거처에 머무르면서 명상을 계속했으며, 그 지역 사람들에게 보시를 청하곤 했다. 그러한 관습은 석가모니시대(BC 6세기)의 인도에서는 널리 알려져 있었고, 석가모니도 깨달음에 이른 뒤 바라나시 근처 어느 숲 속에 있는 거처에서 우기를 보냈다고 한다.
우리나라에서 여름(하안거 4.15~7.15)과 겨울(동안거 10.15~1.15)에 안거를 하면서 수행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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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입산入山(동안거를 위해 선방에 도착)
나무들은 지난여름에 무성하던 나뭇잎들을 모두 털어내고 본래의 온몸을 드러냈다.
겨울이 되면 나무들은 모든 것들을 훌훌 털어버리는데 나는 두꺼운 아만我慢의 옷을 더 껴입었다. 깨달음이라는 것도 저 나무들처럼 불필요한 욕심이나 성냄, 어리석음의 이파리를 모두 털어 버리고 진리만 남아 저렇게 단단하게 서는 것은 아닐까?
2. 용상방 짜기(보직 부여)

선원에 들어오면 서로의 법랍(수행 경력)을 가늠해 보고 마음속으로 내 소임은 어느 정도일 것이라고 마음속으로 정한다.
소임에도 상소임과 하소임이 분명하게 있어서 하판 스님이 함부로 상소임을 자청하면 안 되기 때문이다. 나태한 마음이 생겨 보다 편한 소임을 바라는 스님들이 대부분이지만 개중에는 힘든 일까지 자청하고 나오는 본분에 충실한 스님도 있다.
🙏🙏방장(총림의 대표), 수좌(선원의 큰 어른), 선현,선덕(수행 이력이 깊은), 열중,입승,유나(실질적 선방 통솔), 선감,도감(절 살림 총괄 운영), 헌식(대중 공양 생반, 마지를 떠 아귀에게 주는 소임), 명등(전등의 점등 또는 소등), 화대(방 안의 온도 관리), 청중(열중 보조), 지전,부전(예불과 선방의 청소), 간병(환자 보호),정통(화장실 청소), 욕두(목욕탕 청소) 다각(차와 과일을 준비) 시자(선현, 열중 스님을 모심),서기(우편, 택배, 심부름), 별좌(원주 스님 보좌) 원주(절의 살림을 맡음), 고두(절 비품 관리), 마호(무명 옷에 먹일 풀을 쑴)
3. 도량석(새벽에 목탁을 치면서 염불을 하며 절을 돌면서 생명을 깨움)
도량석 소리는 계곡의 골짜기나 산등성이로 퍼져 나무나 곤충들을 깨우고 외롭고 지친 영혼들을 어루만진다.
만약 도량 내에 밤새 쌓인 삿된 기운이 있으면 스님의 도량석으로 청정하게 씻어지는 것이다.
보통 도량석 소임은 지전 중에서 맡아보는데, 지전 일이 많으면 다른 소임을 보는 스님이 대신할 수도 있다. 그래서 이번에는 원주 스
님이 힘든 소임을 맡았으면서도, 흔쾌히 도량석 소임까지 맡아 주었다.
이제 원주 스님은 절 구석구석 도량석을 다 돌고 어간 문(법당의 정 중앙에 위치한 문) 앞에 서서 반배 하며 목탁을 길게 세 번 내린다.
이어지는 쇳송 소리. 종이 끝나면 죽비로 예불을 해야 할 차례다. 첫날이라 나는 죽비를 내 앞에 가져다 놓고 약간 긴장하여 실수가 없도록 머리로 한번 헤아려 보았다. 종 소리가 끝나자 나의 집전 아래 죽비 삼타로 아침 예불이 이루어졌다.(선방이라서 예불 시 염불, 즉 반야심경,예불문, 천수경 등을 생략함)
예불이 끝나자 가사를 접고 바로 대중들은
좌복에 가부좌를 틀고 앉았다. 몸을 이리저리 흔들어 가장 안정되고 자연스런 자세를 잡고 눈은 지그시 반개하고 호흡을 가다듬었다.
앉아 있는 스님들 사이에 정적이 일고 일순간 긴장이 감돌았다 그 정적을 깨며 불기 2546년 임오년 동안거의 첫 입선 죽비가 열중 스님에 의해 세 번 울렸다.
🙏🙏새벽 3시. 어김없이 목탁소리가 울리면서 산사에 아침을 깨운다. 두 시간의 새벽 수행이 시작된다.
4. 결제 법어(법문)
스님들이 목탁 소리 따라 일제히 삼배를 올리고 자리에 앉았다.
방장 스님은 많이 늙으셨다. 이마에 주름도 더 많아지고 허리도 약간 굽으셨다. 내가 얼마 전에 인사차 찾아 본 적이 있었다. 그때는 말씀도
잘하시고 건강하셨다. 그러나 눈만은 구십을 넘은 노인답지 않게 강하게 살아 빛을 발했다.
~~~~말 없이 앉아 계시던 스님의 주장자가 힘차게 솟아 오르다 멈추어 섰다. 그리고 한 마디 하셨다.
" 이 도리를 알겠는가. 이~뭐~꼬, 어~억~!"
그리고 주장자로 세 번 법상을 내리쳤다.
5.참선의 즐거움
어떤 때는 공부에 들어갔는데, 오전의 세 시간이 눈 깜짝할 사이 지나가 버렸다. 마음 집중, 즉 삼매에 빠져 있었던 것이다. 물론 삼매가 깨달음과 직결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최소한 삼매에 빠져 있는 시간 동안은 자비와 사랑이 온몸으로 스며들었다. 그래서 내 마음은 평온과 행복으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러한 것이 계속 지속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것을 갈구하면 할수록 매달리려고 하면 할수록 그런 집중은 사라져버리고
충족되지 않는 욕구불만 때문에 스트레스가 쌓이기 마련이다. 공부에는 굴곡이 있기 마련이어서 한결같지가 않다. 그러므로 잘 안 되면 놓아버려야지 인위적으로 하려고 하면 더 힘들어진다.
오늘도 어김없이 오후의 입선 죽비가 울린다. 문득 주위의 울창한 나무들과 절 주위를 빙 둘러 싼 산이 갑갑하다는 생각이 든다. 밖에 나가 한 바퀴 휘휘 돌고 오면 마음이 편할 것이라는 생각을 해본다. 문제는 빙 둘러싼 산이 아니라 내 마음이 흔들리고 있는 것이다. 다시 나의 역마살이 발동한 것일까?
요즘 따라 타성에 젖어 공부가 잘 되지 않는다. 마음을 한 곳에 집중하려고 노력하면 노력할수록 놀고자 하는 마음이 다른 쪽 마음의 속셈을 간파하고 요리조리 발을 뺀다. 계속 노력하다 머리가 지끈지끈 아플 때쯤 되면 방하착放下着 아예 모든 것을 놓아버린다.
6.삭발하는 날(음력 14일, 29일)
삭발일 날 아침 발우공양에는 죽 대신 찰밥과 미역국이 나온다.
삭발을 하면 몸의 진기가 빠지고 열이 위로 치솟는다 한다. 그래서 끈기 있는 찰밥을 먹음으로써 에너지를 보충하고 찹쌀의 찬 성분이 위로 솟은 열을 식힌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실제로 삭발 목욕을 하고 나면
평상시와 달리 몸이 나른하며 기운이 빠지는 것을 느낄 수가 있다.
부처님은 출가하면서 긴 머리가 수행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보고 삭발을 택하였다. 과거현재인과경 에 보면 부처님은 삭발을 하고
나서 "원컨대 일체의 번뇌와 익힌 습장을 끊어 없애 주소서" 하고 발원하였다. 이렇듯 삭발은 과거 무명에 휩싸여 살아온 속세와의 절연
의미하기도 하며 번뇌를 남김없이 없애기를 발원하는 경건하고도 엄숙한 의식이다.
7.무명옷 풀하기
마호 스님은 아침 일찍 일어나서 하늘을 보고 날씨를 볼줄 알아야 한다. 구름 한 점 없고 날씨가 화창할 것 같으면 풀을 쑨다. 풀 옷과 궂은 날씨는 상극이어서 만약 마른 상태에서 비가 내리게 되면 곧 옷은 쉬어서 냄새가 나게 되고 풀옷은 버리게 된다. 만약 그렇게 갑자기 비가 내리게 되면 몇몇 스님들은 덜 마른풀을 비닐에 싸서 냉장고 냉동실에 보관하는 경우도 있다. 급속 냉동해야 효과를 볼 수 있기 때문이다.
일단 풀을 쑤고 나서 다시 고운 채로 걸러낸다. 그래야 고운 입자가 남고 골고루 옷에 스며들게 되는 것이다. 그러나 간단하게 소규모로 한다면 식은 밥을 가져다가 그것을 천 주머니에 넣고 짜는 것을 반복하면 된다.
8. 포살(일상 생활의 나태함을 점검)
계율은 비도덕적인 행위를 막는 법이라 할 수 있다. 계는 좋은 습관 도덕적 행위라는 뜻으로, 부처의 가르침을 실천하여 해탈의 경지를
원하는 사람이 자기 자신에 부과하는 윤리적 덕목이며 도덕에 가까운 말이다 율은 수행승이 준수해야 할 규칙이라는 뜻이다. 계가 자발
행위의 규준인데 대하여 율은 사원 생활자를 구속하는 법률과 같다. 포살에서 설하는 "보살계본"은 전자에 속한다고 볼 수가 있다.
9. 운력
대중생활에서 발생하는 일들은 보통 각자 소임을 분담해서 처리한다. 그러나 개중에는 전체 대중들이 모여서 할 일이 따로 있다. 규모가 생각 외로 큰 일은 몇몇 스님의 힘으로 할 수가 없다. 그럴 때는 산중의 모든 스님들이 나서는 운력運力을 한다. 운력이란 여러 사람이 힘을 모아 함께 일하는 것을 말한다. 보통 대중들이 구름처럼 모여 일을 한다는 뜻에서 운력이라고도 한다. 일반 사람들이 흔히 쓰는 '울력' 이라는 말은 운력이 음운변화로 바뀌어서
생긴 것이라고 한다. 일반사람들에게는 노동을 뜻하나 사찰에서는 중요한 수행의 하나인 것이다.
🙏🙏중국 당나라의 백장선사는 운력에 관계된 일화로 유명하다. 백장은 90세에도 다른 대중들처럼 운력을 하였다. 시자가 농기구를 숨기어 일을 하지 못하게 되자 하루를 굶었다.
그 후 '一日不作 一日不食' 즉, '하루 일하지 않으면 하루 먹지 않는다.는 말이 나왔다.
백장스님은 "백장청규" 를 만들어서 수도 생활의 규범과 조직, 운영을 체계적으로 규정했다.
10. 지대방
지대방에는 쉬는 시간이 되면 오갈 데가없는 하판스님들이 주로 모인다. 중판 이상의 스님들은 각자 개인 방이 주어지거나 두셋씩
수있는 방이 주어진다 그러나 가끔씩 중판이나 상판스님들도 지대방의 분위기를 파악하거나 하판 스님들과 어울리기 위해 들어온다. 그러면 큰방에서는 상판 스님이지만 지대방에서는 모두 다 편한 자세로 친한 도반이 되어 이야기를 나눈다.
11. 도반(깨침을 가꾸어 가는 벗)
선방스님들은 순수하고 때가묻지 않았다 도반이 어려움에처했을때 의외로 자신의 손익계산을 하지 않고 도와 주는 스님들이많다.
수행하는 도중에도 주위의 도반이 개인적으로 맘에 들어 하면 아무대가 없이비싼 등산복이나 시계 모자 같은 것들을 준다. 더 나아가서는
어렵게 토굴 생활을 하며 생활의 여력이 없는 도반스님들에게 아무 대가없이 생활비를 보태 주기도 한다
그러나 도반의 관계도 차츰 손익 계산에 들어가면 금이가기시작 한다.
12. 발우공양
온갖정성 두루쌓인이 공양을
부족한 덕행으로 감히 받누나
탐심을 여의어서 허물을 막고
육신을 지탱하는 약으로삼으며
도업을 이루고자 이제 먹노라 -오관게五觀偈
밥이 다 돌아가면 죽비 소리에 맞춰 모두 합장을 하고 공양에 들어간다. 식사를 하고 있지만 그저 미세한 소리만 들릴 뿐이다. 부처님께서는 맛을 탐닉하고 배불리 먹기 위해서 식사하는 것이 아니고 수행을 하기 위한 약으로 알고 최소한의 음식만 섭취하라고 하셨다. 그리고
발우공양도 수행의 연속이므로 공양할 때는 일체 말을 해서는 안 되며수저 소리나 음식 씹는 소리를 내면 예의에 어긋난다. 고개는 반듯하게 들고 눈은 항상 자기 발우를 벗어나지 말며, 일 단 한번 받은 음식물은 남겨서는 안 된다.
13.가행정진
부처님께서 깨달음을 이루신 성도절이 곧 다가온다. 성도절은 부처님께서 6년이라는 수행에 종지부를 찍고 새벽 별을 보며 깨달음을 이루신 날이다. 이날을 기하여 전국의 80여
선방에서는 일주일이라는 기간을 정하고 더 한층 공부에 매진한다.
그래서 성도절까지 일주일간의 가행정진이 있다. 이때는 평소보다 휠씬 더 많은 시간을 잡아 특별 정진에 들어가는 것이다. 몇몇 큰
선방에서는 아예 허리를 방바닥에 눕히지 않고 일주일 동안 철야정진 하는 용맹정진을 한다.
수자타의 우유죽공양을 드신 보살은 지금까지의 고행의 길을 버리고 보리수나무 밑에 자리를 잡고 선정에 들어갔다. 보살은 내 여기서
위없는 깨달음을 얻지 못한다면 차라리 이 몸이 부서지는 한이 있더라도 마침내 이 자리에서 일어서지 않으리라' 는 굳은 결심을 하였다.
이렇게 마구니를 내쫓고 깊은 명상에 들어 새벽녁 샛별이 반짝거릴 때에 드디어 보살은 모든 미혹의 번뇌를 일순간에 다 끊어버리고 정각을 얻어 부처님이 되었던 것이다.
새벽녁이 되자 스님들의 자세가 많이 흐트러졌다. 몸을 이리저리 비트는 스님이 있는가 하면 쉬지 않고 조는 스님도 나타났다. 나도 이래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면서 몸을 잎뒤로 흔들면서 수없이 졸았다.
14.자자(내 허물을 드러내다)
안거가 끝날 즈음이 되면 자자를 한다.
올바르게 살고자 하는 마음이 바탕이 된 이 의식은, 동료들에게 자신의 잘못을 성실히 지적해 주기를 청하고, 본인도 동료의 잘못된
행위를 지적해 주는 행위이다. 만약에 어느 스님에 대한 감정에 좌우 되어 함부로 말을 한다면 오히려 다툼이 일어날 수도 있으므로 서로 간에 믿음이 없으면 절대 행할 수가 없다. 이것은 서로 간에 허물을 지적하고 참회함으로써 승려 본연의 청정함을 유지하려는 제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