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의 시간

메마른 삶/그리실라우스 하무스 임소라 옮김

돛을 달고 간 배 2025. 4. 21. 05: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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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 소개
그라실리 아누 하무스 Graciliano Ramos

1892년 브라질 북동부 알라고아스주의 내륙 오지에서 열여섯 명의 형제 가운데 장남으로 태어났다. 열일곱 살이 되던 1909년 <알라고아 스 저널>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1915년에는 리우데자네이루에서 여러 가명으로 저널에 기고하는 등 기자로 활동했지만 아버지와 살기 위해 다시 알라고아스주의 파우메이라 두스 인지우스로 돌아와 정착했고, 1927년에는 시장으로 당선되어 2년간 일했다. 1933년 <카에 테스>를 발표하면서 문단에 등단했고, 1934년 <성 베르나르두>를 발표했지만 이듬해 브라질 공산주의 봉기에 가담했다는 이유로 체포되어 리우데자네이루에서 복역했다. 1936년에는 감옥 생활을 소재로 한 <고뇌>를, 이듬해엔 그의 대표작인 <메마른 삶>을 발표했다. 메마른 땅에서 시들어가면서도 부서지지 않는 희망을 붙잡으며 살아가는 '파비아누 가족'을 그린 이 작품으로 윌리엄 포크너 재단상을 수상했다 <메마른 삶>은 1963년 동명의 영화로도 제작되었고, "배고픔의 미학"이라 불린 브라질 시네마 노부 운동의 핵심적인 작품으로 평가받았다. 염세주의와 건조한 문체를 특징으로 하는 하무스의 작품들은 브라질 향토문학의 큰 줄기를 형성했고. 지금도 세계 각국에서 번역되거나 각색되고 있다. 그 밖의 작품으로는 소설집 <불면증>(1947). 사후에 출간된 회고록 <옥중기>(1953) <여행>(1954) 등이 있다.
1953년 리 우 데 자네이루에서 폐암으로 사망했다.

옮긴 이 임소라

한국외대 포르투갈어과를 졸업하고, 브라질 히우그란 지도 술 연방대학교에서 박사 학위를 받았다. 현재 한국외대 포르투갈어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옮긴 책으로는 <절벽에서 젖소를 떨어뜨린 이유>. <실끝에 매달린 주앙>, <동 카즈무후> 등이 있고, 지은 책으로는 <원시와 첨단이 공존하는 나라 브라질 이야기> 등이 있다.


차례
이주 007
파비아누 019
감옥 032
비토리아 어멈 048
작은아이 059
큰아이 069
겨울 078
축제 089
발레이아 106
계산 115
노란 제복의 군인 126
새 떼로 뒤덮인 세상 136
도주 147

해설| 환경 난민과 기아, 그 불평등한 연결 고리 162


🌐🌐들어가는 말
메마른 땅, 먹을 것도, 입을 것도, 마땅히 거처도 없다.
모진 가뭄은 가족 간의 신뢰마저 금을 가게 만 들고 키우던 앵무새 마저 배고픔의 희생양이 되었다. 한 모금 목을 축일 물조차도 구하기 힘든 여정, 나라면, 우리들이었다면 감당할 수 있었을까?



💥💥비토리아 어멈은 아이를 뒤꽁무니에 둘러업고 머리에는 양철 트렁크를 이고 있었다. 오다리인 파비아누는 어두운 표정으로 잡낭을 사선으로 둘러멘 채 허리춤에 단 끈에는 물통을 매달고 어깨에는 수발총을 걸쳐 메고 있었다. 큰아이와 강아지 발레이아가 그 뒤를 따랐다. 주아 대추나무가 다가왔다가 멀어지더니 사라졌다. 큰아이가 땅바닥에 주저앉아 울기 시작했다. "일어나, 망할 놈의 마귀 같은 자식!" 아버지가 아이에게 소리쳤다. (이주의 모습 1)
🙏🙏
비토리아와 파비아누는 부부다. 이름도 없는 큰 아이, 작은 아이와, 이름 있는 암캐 발레이아와 앵무새 여섯 가족? 의 살 곳을 찾아가는 힘든 여정의 환경 난민(가뭄, 홍수, 지진, 해일)이다.
이제 파비아누는 비토리아 어멈과 아이들의 교육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었다. 분명 아내의 잘못은 아니었다. 비토리아 어멈은 집안일에 푹 빠져 패랭이꽃과 쑥에 물을 주고, 물가에 빈 물동이를 가득 채워 돌아오곤 했다. 아이들은 돼지처럼 가서  진흙탕을 뒹굴며 돌았다. 게다가 한창 궁금한 것이 많은 나이여서 참기 어려울 정도로 질문을 해댔다. 파비아누는 무지함이라는 표현에 잘 어울렸다. 하지만 그에게 알 권리가 주어진 적이 있었던가? 과연 있었던가? 없었다. (이주 2)
🙏🙏파비아누는 단음절로 된 얼마간의 문장만 말할 수 있었다. 그것은 대화라고 말할 수준이 되지 못했다. 가르쳐 줄 사람도 없었고 배우고 싶은 생각도 없는 전문 소몰이꾼이었다.

💥💥아들을 그 황량한 곳에 버려야겠다는 생각이 오지인의 복잡한 머릿속을 스쳤다. 독수리 떼와 말라붙은 사체 조각들이 떠올랐다. 그는 망설이듯 더러운 붉은 수염을 굵으며 주변을 살폈다. 비토리아 어멈은 입술을 쭉 내밀며 한 곳을 막연히 가리키더니 가르랑대는 쉰 목소리로 목적지에 거의 다다랐다고 말했다. (이주의 모습 3)
🙏🙏
전쟁터에서 전투를 벌이다 중상을 당한 동료를 버리고 가느냐, 아니면 같이 가다가 다 죽음을 당하느냐 경우와 같은 상황이다. 힘들고 벅찬 행군이 어린애가 감당하기엔 역부족이었으리라. 부모의 생각이라면 지극히 동의할 수 없는 장면이지만, 상황은 그들만이 알고 있을 뿐이다.
💥💥잠에 들 때쯤 발레이아가 기니피그 한 마리를 물고와 잠을 깨웠다. 모두가 소리치며 벌떡 일어났다. 큰아이는 잠을 떨쳐 내려는 듯 연신 눈꺼풀을 비벼됐다. 비토리아 어멈은 피로 범벅된 발레이아의 주둥이에 입맞춤을 퍼부어대며, 입맞춤을 핑계 삼아 그 피를 핥았다. 그것은 정말 작은 사냥감에 불과했지만, 가족의 죽음을 연기하기에는 충분했다. 갑자기 파비아누는 살고 싶어졌다. (이주의 모습 4)
🙏🙏
이 힘겨운 여정에 발레이아와 앵무새도 가족의 일원이 된다. 가족?을 위한 발레 이아의 식량 조달로 인한 허기의 해소는 단순한 동물의 동행으로 그치지 않고 있다.
💥💥파비아누, "넌 사람이야." 파비아누는 큰 소리로 외쳤다. 하지만 이내 입을 다물었다. 근처에 있는 아이들이 자신의 혼잣말을 듣고 분명 놀랐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그리고 잘 생각해보니 자신은 사실 사람이 아니었다. 다른 사람의 것을 지키는 한낱 "카브라"일 뿐이었다.
🪄카브라~~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물라토와 흑인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인.
🙏🙏
파비아누의 고함마저 애들은 꾸짖는 말로 들을 정도로 대화는 어렵다.
💥💥폭풍우와 함께 농장주도 돌아왔다. 농장주는 파비아누를 내쫓으려 했다. 그러나 파비아누는 못 알아들은 척했다. 팔꿈치를 긁적이며 겸연쩍게 미소를 짓더니 자신이 쓸 만하다고 중얼거렸다. 계속 머물게 해 달라는 것이었다. 그러자 농장주는 그를 받아들였고 그에게 낙인을 건네주었다. 이제 파비아누는 소몰이꾼이었고, 아무도 그의 자리를 빼앗을 수 없었다.
🙏🙏
세르탕(건계와 우계가 뚜렷한 브라질 북동부~중부의 반건조 지역)의 사람들은 가뭄 때는 피했다가 비가 오면 다시 자기의 일터로 돌아오는 방식의 거주를 이어갔다.

💥💥파비아누는 평소에 사람들을 멀리했다 동물들하고만 나무 가시가 부서지고 땅바닥의 지냈다. 열기도 느껴지지 않을 만큼 그의 발은 딱딱했다. 말에 올라타면, 마치 말과 한 몸인 것처럼 말 등에 달라붙었다. 말은 그르렁대며 단음절 위주로 노래하듯 했고, 함께 생활하는 말을 이해하곤 했다. 그는 제대로 서 있지도 못했다. 볼품 사납게 흰 오다리로 이쪽저쪽 비스듬하게 서 있곤 했다. 사람들과 이야기할 때면 가끔씩 동물들에게나 쓰는 소리와 동물들만이 쓰는 그 의성어를 쓰기도 했다. 실제로 그는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
생존의 현장에서 오로지 배운 것은 동물들을 이해하고 조련할 수 있는 소몰이꾼이에 한정되었다.
💥💥돌화로 옆에 웅크리고 앉아 있던 비토리아 어멈은 나뭇잎 무늬의 치마를 허벅지 사이에 낀 채 불씨에 입김을 불어넣었다. 불씨에서 먼지구름이 피어올라 어멈의 얼굴을 뒤덮었고, 연기가 눈을 찔렀다. 흰색과 파란색 구슬로 된 묵주가 어멈의 망토에서 떨어져 솥에 부뒷혔다. 비토리아 어멈은 손등으로 눈물을 홈치며 눈을 찡그렸다. 묵주를 가슴에 쑤셔 넣은 채 볼을 한껏 부풀려 불씨에 계속해서 강한 입김을 불었다.
🙏🙏 불씨는 현재의 삶의 버팀목이고 묵주는 미래의 희망을 간직한 선물이다.
💥💥아이는 계속해서 암캐를 어루만지며, 진흙투성이의 얼굴을 발레이아의 주둥이 가까이 가져가 그 평온한 눈을 깊숙이 들 여다 보았다. 아이는 동생과 함께 진흙으로 동물 모양을 만들며 진흙탕에서 놀다가 온몸이 진흙투성이가 되었다. 장난감을 두고 비토리아 어멈에게 질문하러 갔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자연스럽게 자라야 할 애들마저 환경의 심한 지배를 받고 있다. 환경 난민은 누구의 잘못이란 말인가?
💥💥파비아누는 온갖 몸짓을 총동원해 이야기를 했다. 비토리아 어멈은 젖은 안지 쿠 아카시나무 장작의 불길을 유지하기 위해 연신 부채질을 했다. 한쪽은 춥고 한쪽은 뜨거워 잠을 청할 수 없었던 아이들은 아버지의 터무니없는 이야기를 듣고 있었다. 아이들은 낮은 소리로 이야기의 불분명한 전개에 대해 서로 말을 주고받기 시작했다. 도통 이해할 수가 없어 옥신각신하더니 치고받고 싸우기에 이르렀다.
🙏🙏
극도의 문맹이 가져온 불협화음. 배운 적도 없고 가르친 적도 없는 곳. 누구를 향하여 화살을 쏘겠는가?
💥💥발레이아는 멀리 떨어진 그 구덩이에 도달하기 전에 쓰러 졌다. 일어나려고 애쓰며 머리를 들어보았지만, 앞다리가 축 처진 채 꼼짝하지 않았고 나머지 몸도 옆으로 늘어져 있었다.
이렇게 비틀린 자세로 발레이 아는 힘겹게 몸을 움직였다. 땅바닥에 발톱을 박은 채 발로 기며, 작은 조약돌을 붙잡고 버티기 위해 버둥댔다. 마침내 발레이 아는 힘을 잃고 아이들이 죽은 뱀을 던지던 돌무지 곁에서 무너졌다.
🙏🙏
작가는 무엇을 말하고 싶었을까? 애초부터 발레이아는 가족이었다. 왜 험난한 여정에 발레이아를 동행시켰을까? 그것은  순환하는 세계의 질서에 인간의 오만으로만 채울 수 없는 그 무엇을 발레이아를 통하여 한 사람의 몫으로 대체하였다 할 것이다. 그렇다면 작가는 빈부를 가진 모두가 함께 잘 살아가기를 기저에 깔고 있는 것은 아닐까? 비록 광견병으로 파비아누의 총에 죽는 운명이었지마는 발레이아를 통하여.
💥💥파비아누는 머리를 숙인 채 붉은 턱수염을 긁적였다. 군인이 마체테 칼을 뽑아 들지 않거나 소리를 지르지 않는다면 파비아누는 매우 못된 인간이 될 것이다. 노랗게 질린 저 겁쟁이에게
굴복해야만 하는 것일까? 파비아누는 강인하고 물러설 줄 모르는 수컷이었다.
속부터 타고난 싸움꾼이었고, 허세를 부리다 싸움에 휘말리는 일이 허다했지만 지는 법은 없었다.
🙏🙏
그가 시내에서 무지의 대가로 고함을 질렀을 때 네 명의 노란 제복의 군인에게 폭행당하면서 창살이 둘러싼 감옥에 갇혔을 때를 생각해 분노가 끓어올랐다. 하지만 노란 제복의 군인은 정부다. 그는 다소곳이 길을 안내한다.
💥💥어멈이 물을 것이다. 어멈은 항상 옳았다. 이제 어멈은 아이들이 커서 무엇을 할 것인지 알고 싶어 했다. 소몰이꾼이 되겠지." 파비아누가 말했다 비토리아 어멈은 질색하며 고개를 부정적으로 흔들었고 그 바람에 하마터면 양철 트렁크를 떨어뜨릴 뻔했다. 성모님 부디 그런 재앙에서 아이들을 구해주소서. 소몰이꾼이라니 그따위 생각을 하다니! 그들은 먼 땅에 도착할 것이고, 낮은 언덕. 자갈, 말라버린 강, 가시텀불, 독수리, 죽어가는 가축들 죽어가는 사람들이 있는 이 카칭가를 잊을 것이다.
🙏🙏
잊어버리자. 카칭가(사체가 썩는 듯한 나쁜 냄새)를 뛰쳐나가면서 애들의 미래를 생각한다. 파비아누는 그의 조상이 그랬듯이 애들은 소몰이꾼이 될 것이라고 당연히 생각한다.


🌐🌐나가면서
농업적 삶의 주기는 가뭄이나, 홍수 등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 가족의 시간관을 살펴보면, 현재는 과거의 흔적이나 미래의 확신적인 고리로 연결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통하여 과거와 미래를 하나로 통합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가뭄이 가족을 타게 만들던 그때에도 어느 순간 비가 내릴 것을 알고 있었고, 비가 오면 숲이 우거질 것을 확신하였다.
하지만 그것뿐이었다. 더 나은 삶의 이정표가 없었기에 도시에로의 탈출을 감행한다. 도시는 가족을 죽일 함정일까,  행복의 지렛대를 가져다줄까? 이후의 역할이야 말로 정부가 담당해야 하는 게 아닐까. 생각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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